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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 결과에 자유하라

관리자 2009.02.01 06:52 조회 수 : 5604 추천:27

20세기 초에 일본 나가노 마끼라는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갓 안수 받은 그는 어디에 교회를 개척할  것인지 일본 지도를 펴놓고 기도하다가 동서남북 100키로 이내에 단 한명의 그리스도인도 없는 온갖 미신이 판을 치고 있던 북쪽 가나사와를 찾아냈습니다. 젊은 나가노 목사는 곧 가나사와로 이주하고 그곳에 텐트를 지고 개척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나 한 달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럴 경우 보통 이곳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하고 딴 곳으로 간단히 옮겨 가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나가노 목사는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그곳으로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었기에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이루실 일이 있을 것을 또한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무려 5년간 지켰습니다. 예배 때마다 아내와 아이만을 놓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예배 시간에 천막교회의 장막을 젖히고 첫 번째 교인이 나타났습니다. 청년이었는데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예배가 끝나고 함께 집 식탁에서 저녁을 같이했습니다. 그런데 식사도중 욱하면서 핏덩이를 토해내는 폐병환자였습니다. 당시 만해도 폐결핵은 무서운 불치의 전염병이어서 일반인이 폐병환자와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가노 목사는 순간적으로 갈등이 왔지만 그러나 주님이 처음으로 보내 주신 사람이라는 사실에 그는 자기 손으로 각혈한 핏덩이를 치웠습니다. 그리고 다시 상을 차린 뒤 청년과 함께 저녁식사를 계속했습니다. 그 청년은 유명한 정치인의 사생아로 출생이 어두워 방황하다가 우연히 복음을 접하게 됩니다. 그러다 신학교에 입학하지만 폐결핵이라는 이유로 강제 휴학 처분을 받습니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그가 출석하던 교회에서도 그를 외면하였습니다. 그는 상처를 받고 자살을 결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실시도 직전, 나가노 목사 교회를 방문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식사도중 청년이 각혈을 하였는데도 나가노 목사는 식사를 같이 할 뿐 아니라 자신을 집에다 데려다가 살면서 가족처럼 극진히 보살펴 주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이 청년은 나가노 목사를 통해 다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나가노 목사의 보살핌으로 이 청년은 폐결핵에서 완치되어 신학에 복학 후 목사가 되어 고베와 도쿄에서 수없이 많은 빈민을 위해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청년이 바로 일본에서 유명한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였습니다. 그의 이런 삶의 변화는 물론 나가노 목사의 실천적인 삶의 모습을 배운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도요히코 목사는 나중에 중국에 건너가 중국의 빈민들을 위해서 헌신적인 삶을 살았는데 장개석 총통의 부인인 송미령 여사가 그의 명성을 듣고 그를 모셔다가 성경공부를 하였다고 합니다. 역시 아내를 통해 도요히코 목사를 알게 된 장 총통은 일본이 패한 후에 일본이 철수할 때, 도요히코 목사에 대한 존경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일본사람들이 테러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일본 사람들이 무사히 본국에 가도록 포고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나가노 목사는 평생 한명의 그리스도인 밖에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요즘 경제논리로 보면 면 실패한 목사입니다. 그러나 나가노 목사가 없었다면 도요히코 목사는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결과주의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과정도 인정받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찌하든지 결과를 위해 뛰다보니까 진리를 외면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특히 영혼을 품고 섬기는 일은 결과에 자유해야만 가능합니다. 결과를 생각하면 사랑을 실천할 수 없고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믿기에 이런 결과에 자유한 자들입니다. 오직 한 영혼을 사랑하고 섬기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열매를 거두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