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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44] 개혁은 말씀을 깨닫는데서부터...

관리자 2011.10.30 09:04 조회 수 : 5722 추천:1

오늘은 비텐베르크 대학의 젊은 신학 교수였던 마틴 루터(1483-1546)가 1517년 10월 31일에 대학교회의 정문 앞에 95개조를 내걸고 로마 가톨릭교회에 도전한지 494주년 종교개혁주일입니다. 16세기 초 로마 가톨릭은 심각한 종교적 도덕적 타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성경을 독점하여 사람들은 진리에 대하여 무지하게 만들고, 자신들이 소유한 종교적 권위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착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습니다. 특히 도미니크 종단의 테첼 신부는 면죄부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사면 연옥에서 고통당하는 부모나 형제자매가 고통을 면제받게 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면죄부를 팔아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비텐베르그 대학의 신학부 교수였던 마틴 루터는 이에 대하여 분노하고 비텐베르그 대학의 성단 정문에 면죄부에 대한 부당함을 밝힌 95개 조항 반박문을 내걸었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마침 내 종교 개혁의 불은 타올랐습니다.

이 95개 조항을 걸 때만해도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루터는 법관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던 법학도였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친구와 길을 가는데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면서 아마 소나기가 내린 것 같은데 벼락이 쳐서 같이 가던 친구가 그 벼락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분명히 옆에 있었는데 '우르릉 꽝' 하고 보니까 이미 저 세상 사람입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루터는 법학도가 되기를 포기하고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도사가 됩니다. 당시의 교리는 사람은 믿음과 선행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루터는 부지런히 선행해서 구원에 이르기를 애썼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금식하며 고행하며 선행해도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어떤 존재로 서게 될까. 그런데 나는 죄인이라는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가톨릭의 종교 관행은 죄를 지으면 신부 앞에 가서 고해성사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차례씩 공부하다가 기도하다가 자기 죄가 생각나면 신부에게 쫓아가서 자기 죄를 아뢰고 했습니다.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회개했건만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 교황청이 있는 로마를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관습대로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기도하면 모든 죄가 사해진다는 생각에 루터는 큰 기대를 품고 무릎으로 그 계단을 올라가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아픔을 참고 한 계단 한 계단 무릎으로 오르면서 참회했지만 마음속에 사죄 받았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 때 문득 가르치면서 묵상했던 평소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 말씀이 바로 로마서 1:17 말씀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루터는 내가 고행하고 내 힘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정한 구원의 확신을 성경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루터가 처음부터 로마 가톨릭의 대한 제도적 개혁을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성경을 통해서 구원의 확신을 갖고 보니까 그 당시 로마 교회가 하는 모든 관행들이 너무나도 성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개혁의 시작은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데서 시작됩니다. 즉 말씀의 회복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개혁은 진정 자신 안에서 시작됩니다. 개혁은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정죄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의 심장 안에서 타오르는 진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변화와 회복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