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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34] 죽음을 보면서...

관리자 2009.08.22 19:01 조회 수 : 5474 추천:24

이번 한 주간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서거로 인하여 온 나라가 애도와 추모로 지냈습니다. 사람은 살아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죽으면 그 사람의 삶이 새롭게 평가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은 너무나 유명한 정치인으로서 새삼 설명이 필요 없는 분입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과 삶이 서거한 후에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을 이번에도 봅니다. 정치적 입장마다 좀 다르긴 해도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김 전 대통령에게 대해 민주주의 발전과 남북화해를 그의 공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물론 과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요.

이번에 유서는 없지만 일기가 공개되어서 저는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눈에 띄는 대목은 1월 6일 자신의 생일날 글에서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 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1월 15일 일기에는 “긴 인생이었다. 나는 일생을 예수님의 눌린 자들을 위해 헌신하라는 교훈을 받들고 살아왔다. 납치, 사형 언도, 투옥, 감시, 도청 등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역사와 국민을 믿고 살아왔다”면서 “앞으로도 생이 있는 한 길을 갈 것이다”라고 쓰여 있어 김 전 대통령의 믿음의 고백을 보게 됩니다.

2009년도 우리 사회는 유난히 죽음이 많았고, 죽음이 사회적 화두가 되었습니다. 지난 2월16일 김수환 추기경 선종은 존경받는 성직자의 죽음이 가져다 영향력을 보았고 이로 인해 카톨릭은 교세 확장에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3월 7일 연예인 장자연씨  자살을 통해서는 우리 사회의 어둠을 다시한번 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는 김모할머니 가족이 제기한 연명치료 중단을 대법원에서 받아들여 존엄사 논쟁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난 5월 23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국민들의 추도 속에서도 사회적 갈등과 논란이 많았습니다. 또한 6월 26일에는 세계적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사망하여 세계가 추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일련의 죽음의 사건을 대하면서 한 인생의 죽음은 어떤 의미로든 의미를 던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나는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어야할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사도행전을 묵상하면서 바울의 죽음이 생각났습니다. 바울은 물론 로마에서 복음 전하다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그도 빌립보서 1장을 보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는 죽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 두 사이에 끼어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강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휠씬 더 좋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 끝에 살기로 결단합니다. 그것은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죽음과 삶의 문제를 결정하는 기준은 주님이 나에게 맡겨준 성도의 유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는 햄릿이 고백한 것처럼 “사느냐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삶과 죽음이냐?”가 중요했습니다. 그는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이 간절한 기대와 소망이었고, 그래서 될 수 있다면 자신이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까지 고백합니다. 바울은 삶과 죽음을 철저히 소명으로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도 많은 죽음을 우리는 계속 목격하다가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럴 때 내가 길게 살고 짧게 살고, 부하게 살고 가난하게 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소명을 다하여 살았는가를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