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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40] 돌은 내가 옮겨야...

관리자 2007.10.08 06:31 조회 수 : 5559 추천:26

  지난 번 믿음의 주제를 가지고 설교 할 때에 말씀드린 예화입니다. 오래전 서울에 5층짜리 빌딩이 있었는데 4층에 개척교회가 들어섰더랍니다. 주일 낮 예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주일 저녁예배, 밤 예배, 철야를 하려고 하면 심각합니다. 교회에서 분위기 있게 노래를 부르면 위층에 술집이 하나 있었는데 술집에서도 분위기 있게 합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노래 부르면 위에서도  "이름도 몰라요"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웅장하게 노래를 부르자 위에서도 웅장하게 "누가 사랑을" 예배가 안되는 겁니다. 목사님이 한 달을 작정하고 기도했습니다. 술집 좀 없어지게 해달라고. 작정하고 기도한지 25일이 지났는데 술집에 불이 났어요. 그런데 5층 술집만 새까맣게 타고 4층에는 예배당과 식당이 있었는데 커튼 하나도 안 탔어요.

  술집 주인이 아래층에 있는 목사님이 술집 없어지게 작정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이 불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목사님이 기도해서 불이 났다는 겁니다. 목사님을 경찰서에 고소했어요. 목사님이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죄송합니다. 술집 사장의 얘기인 즉은 목사님이 기도해서 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목사님이 "내가 술집 없어지게 기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기도했다고 불이 났겠습니까?" 그랬더니 조사계장이 "목사님 이상하네요. 술집 사장은 기도의 능력을 믿는데, 목사님은 기도의 능력을 믿지 않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사의 결론이 이렇습니다. "이렇게 믿음 없는 목사의 기도로 불이 난 것 같지는 않음"  

  제가 총신대학과 신대원을 다닐 때 항상 신학교 입구에 큰 돌에 쓰여 있는 교훈이 있었습니다. 다섯 가지였는데 "신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성자가 되라, 순교자가 되라"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 이해가 가는데 "신자가 되라"는 교훈은 좀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신자가 되었으니까 신학교를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목회하면서 자꾸 이 "신자가 되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목사가 되고 목회를 하면 할수록 이 말씀이 더욱 사무치게 느껴 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분명 말씀을 분명 믿는 자 같은데 현실에서는 그 믿음이 실종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한다고 하면서도 현실에 돌아가서는 믿음의 능력과 역사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교회를 어지럽게 만들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초신자들이 아니라 대부분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기신자들이요, 직분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교회에 어려움은 새 신자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새 가족들은 처음에 와서 믿음이 잘 자랍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눈을 뜨고 본격적으로 믿음으로 살아야 할 분들이 힘들어 합니다. 물론 이것은 긍정적으로 보면 그만큼 신앙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모두의 딜레마입니다. 그것은 이론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맞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믿음은 미사려구가 되고 실제는 현실만 남게 됩니다. 분명 주님은 믿음은 역사를 일으킨다고 말씀하셨지만 여기에는 별로 기대하지 않고 현실만 보고 낙담합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나사로를 주님이 살리시는 기사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지체하시는 바람에 나사로는 죽고 나흘이 지나 도착하셨습니다. 그 때 마리다와 마리아가 원망섞인 말로 예수님이 일찍 오셨으면 오라비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때 주님은 마르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합니다. 주님이 돌을 옮기지 못해서 돌을 옮기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마르다에게 믿음을 요구한 것이지요. 그 믿음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살릴 수 있는 것을 믿기에 돌을 옮기는 행위가 바로 믿음입니다. 우리는 나사로를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돌은 옮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도 옮기지 않으면서 힘들어하고만 있지는 않습니까? 돌은 내가 옮겨야 주님이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