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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4] 무관심의 죄

이몽식 2012.10.14 07:08 조회 수 : 4905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거리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나이 70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살을 한 것이었습니다. 앰뷸런스가 와서 할머니는 곧 병원으로 실려 갔고 뒤이어 달려온 경찰들이 사람들을 해산시키고는 자살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할머니의 아파트로 올라갔습니다. 실내는 온갖 고급 도구와 사치스런 장식품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왠지 썰렁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이 정도 살림으로 보았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닌 것 같고, 혹시 건강상의 이유나 불치병 때문일지도 몰라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주치의는 할머니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건강했다고 말했습니다. 골똘하게 고민하던 경찰관은 책상을 뒤져보았습니다. 할머니의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수첩을 펼쳐보는 경찰관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 하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머니의 수첩엔 365일 동안 똑같은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오늘도 아무도 나에게 오지 않았음."

 

‘제노비즈의 경우’(Genovese Case)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뉴욕 퀸스에서 발생하였던 실화에서 나온 말입니다. 1964년 키티 제노비즈가 살해되었습니다. 이 여자가 공격을 받고 살해되는 장면을 38개의 얼굴이 창문에서 바라보았는데 한 명도 경찰을 부르거나 나가서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경찰이 이들 목격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한결같이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경찰에 알리거나 말기는 사람이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구경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처럼 옆에서 범죄가 진행되는 것을 보고도 이를 수수방관 하는 인간의 감정이 병적으로 무디어진 경우를 일명 ‘제노비즈의 경우’라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성경에도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그 비유에 보면 부자는 살인죄나 간음죄나 그밖에 다른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죽은 후 그 영혼이 불꽃 속에서 고통과 고민을 받으며 자기 집 대문에서 얻어먹던 거지 나사로에게 물 한 방울만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애원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까? 물론 그의 혀로 남을 멸시하며 교만한 말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집 대문간에서 온 몸에 헌데를 핥으며 먹다 버린 쓰레기나 뒤져 먹고살던 이 거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무관심한 것입니다. 또 그의 영혼 문제나 사후 문제에 대해서도 무관심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성경에 죄명이 없는 또 하나의 무서운 죄가 있으니 곧 무관심의 죄입니다.

 

 

현대인이 갖고 있는 가장 무서운 병은 무관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캐덜린 대학의 명예총장 로우렌스 고울드 박사는 인간사에서 늘어나고 있는 무관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의 미래에 가장 두려운 일이 폭탄이나 미사일, 핵무기 때문에 생기리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나는 우리 문명이 그런 식으로 끝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죠. 바로 우리가 더 이상 아무 것에도 신경을 쓰려하지 않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마저도 회피하려 들 때 멸망이 찾아올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도와달라고 절규하는 이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의 이기심을 버리고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것처럼 이웃에게 사랑과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손을 펼쳐 그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들의 이웃이 되어줄 때 구원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