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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5] 예수님 한분으로 충분합니다

관리자 2010.06.20 10:54 조회 수 : 5832 추천:33

러시아의 유명한 문학 단편 중에 고골리의 ‘외투 이야기’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어느 관청에 근무하는 말단 아까끼은 문서를 베껴 쓰는 일에 남다른 애착을 보입니다. 주변 동료들이 그를 재미 삼아 놀려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자기 운명에 만족하며 평온하게 살아가는 그에게 뜻밖의 큰일이 생깁니다. 외투가 너무 낡아 러시아의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겨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로부터 그에게는 소원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고급 외투를 한 벌 사는 일이었습니다. 외투가 그의 삶의 목적이었고, 삶의 꿈이었습니다. 그는 그리하여 눈물겨운 금욕 생활 끝에 새 외투를 장만하여 처음으로 입고 출근하게 됩니다. 그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마치 그날 날, 직장 상사가 축하 파티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파티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에 인적이 드문 어두컴컴한 거리에서 갑자기 강도가 나타나 그는 외투를 강탈당합니다.

그는 절망 속에 빠져 자기 외투를 찾아 달라고 경찰 서장에게 진정하고 유력한 인사들에게 매달려 보지만 냉대와 질책만 받고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합니다. 아까끼는 절망 끝에 그 충격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마침내 죽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가 다니던 뻬쩨르부르그 거리에는 밤마다 유령이 나타나 “내 외투, 내 외투” 소리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게 됩니다. 이 소설을 생각하면 소설 속의 한낮 에피소드로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요즘 시대에 들려오는 소리를 듣습니다. 거리마다, 집집마다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내 외투, 내 외투”외치는 소리처럼 “내 아파트, 내 집, 내 증권, 내 보험, 내 주식, 내 자리, 내 자식”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모두가 내 삶의 행복을 위하여 뛰지만 실제 그것으로 행복하지 않는 현대인들을 보게 됩니다.  

이 고골리의 외투 이야기를 보면서 유대인의 탈무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행복을 찾아 열심히 일해서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 지위도 얻었지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중병에 걸려 눕게 된 사업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자녀들이 아버지의 병을 치유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진도가 없이 악화되고만 있었습니다. 어느 날 랍비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자 “그러면 참된 행복을 느끼고 사는 사람, 난 정말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발견하여 그의 외투를 빌려다가 아버지께 덮어 드리라”고 말합니다. 그의 자녀들이 온갖 곳을 다니며 온갖 사람을 만나 보았지만 자신이 정말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산중의 수도원을 방문했다가 굴속에서 한 수사가 “하나님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정말 행복합니다. 이제 안식에 들겠습니다.”고 기도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너무 반가워서 굴속으로 들어갔더니 그에게는 걸치고 있는 외투가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자녀들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답니다.

이것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것은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하루가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라. 한 주가 행복하려면 여행을 하라. 한 달을 행복하려면 새 집으로 이사를 하라. 한 해가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그러나 일생이 행복하려면 이웃을 섬기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행복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섬김에서 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진정한 행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자는 더 이상 소유나 환경에서 행복을 찾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님 안에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예수 안에 있는 행복을 소유하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