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물건이나 남의 처한 상황이 더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내 떡이 더 크더라도 남의 떡이 더 크게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영어에도 그런 속담이 있습니다. “The grass always looks greener on the other side." 이 표현을 풀이하면 ”다른 쪽에 있는 잔디가 항상 더 푸르게 보이다.“ 뜻입니다. 우리 눈에는 항상 남의 손에 들린 떡이 더 커 보입니다. 남이 가진 게 더 좋아 보이고 더 많아 보이고, 더 잘되는 것 같고, 더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에 비해 내가 가진 것은 너무 초라해 보입니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개 한 마리가 입에 뼈다귀를 물고 다리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개울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비친 뼈다귀가 더 먹음직스럽게 보여 그걸 물기 위해 입을 벌리다가 자기가 가진 진짜 뼈다귀를 잃어버렸습니다. 그 개는 환상 때문에 현실을 내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못하면서 남의 삶을 부러워하며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내 삶보다 다른 사람의 사람이 부럽지만, 막상 남의 삶을 살아보면 지금의 나와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을 알고 실망할 것이 분명합니다. 다른 사람의 특별한 삶이 부러워 할 수 있지만 평범한 내 삶 속에 느낄 수 있는 행복은 참으로 많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다른 사람의 삶의 모습을 부러워하는 것으로 너무 많은 삶의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습니다.
어느 예술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작품을 1개만 전시했더니 관람객이 와서 10분 동안 그 한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더군요. 이번에는 작품 50개를 전시했더니 관람객이 와서 10분 동안 50개의 작품을 둘러보고 가더군요. 그런데 50개를 본 사람보다 한 개를 본 사람이 제 그림의 의미와 의도를 더 잘 깨달았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물량에 의해서 평가되고 있어 좀 더 많은 것을 선호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죽는 줄 모르고 달려가는 세상입니다. 그것은 현대인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요즘 여행을 보면 짧은 일정에 많은 곳을 보려고 욕심을 내면 정작 한곳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증 샷을 하고 오는 것에 불과합니다. 다양한 요리를 먹고 싶어 수많은 요리가 잔뜩 쌓여 있는 뷔페식당에 가면 잘 먹을 것 같지만, 잘 먹었다는 느낌보다는 배만 잔뜩 불러 나옵니다.
왜 그러면 우리는 내가 가진 한 가지에 집중하고 만족하기보다는 남이 가진 많은 것을 부러워할까요? 내 삶의 내면이 너무나 작고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내 마음의 그릇이 작아 그것들을 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만 하고 자기 안에 있는 소중한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만 커져 있지 진정 그것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이 가진 많은 것을 부러워하기 전에 많이 담을 수 있도록 내 그릇을 키우는 일이 먼저입니다. 그릇이 크면 큰 만큼 내용물은 저절로 채워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내 삶이 여유로와지고 풍성한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이 내 삶의 공간 안에 들어와 쉴 수 있도록 말입니다. 세상만 보고 달려가지 말고 말씀 안에서 내면을 돌아보고 믿음을 키우는 일에 헌신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댓글 0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63 | [2019-01-20] 겨울나기 | 이몽식 | 2019.01.20 | 981 |
362 | [2019-01-06] 2019년 새해에... | 이몽식 | 2019.01.06 | 978 |
361 | [2018-08-05] 버리지 않고는 | 이몽식 | 2018.08.06 | 978 |
360 | [2018-06-03] 하나님의 사람 | 이몽식 | 2018.06.15 | 978 |
359 | [2018-05-20] 목양(牧羊)의 길 | 이몽식 | 2018.05.21 | 976 |
358 | [2019-01-27] 창조의 목적 | 이몽식 | 2019.01.27 | 972 |
357 | [2019-02-17] 눈 내리는 날에 | 이몽식 | 2019.02.17 | 971 |
356 | [2019-03-31] 내시경 시술 | 이몽식 | 2019.03.31 | 969 |
355 | [2018-05-27] 세월은 잊으라고 하는데 | 이몽식 | 2018.05.28 | 968 |
354 | [2018-05-13] 엄마의 잔소리 | 이몽식 | 2018.05.13 | 968 |
353 | [2018-09-16] 가을의 기도 | 이몽식 | 2018.09.16 | 967 |
352 | [2018-05-20] 목양(牧羊)의 길 | 이몽식 | 2018.05.21 | 967 |
351 | [2019-01-06] 2019년 새해에... | 이몽식 | 2019.01.06 | 965 |
350 | [2018-04-15] ‘카르페 디엠’(carpe diem)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이몽식 | 2018.04.14 | 961 |
349 | [2020-05-03] 부모의 기도 | 이몽식 | 2020.05.03 | 960 |
348 | [2018-09-16] 가을의 기도 | 이몽식 | 2018.09.16 | 956 |
347 | [2018-05-27] 세월은 잊으라고 하는데 | 이몽식 | 2018.05.28 | 956 |
346 | [2019-12-22] 크리스마스 | 이몽식 | 2019.12.22 | 953 |
345 | [2018-05-13] 엄마의 잔소리 | 이몽식 | 2018.05.13 | 952 |
344 | [2019-02-17] 눈 내리는 날에 | 이몽식 | 2019.02.17 | 9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