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두 번의 주일오후 예배시간을 통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분명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기적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기적이라는 단어를 남용하는 분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날은 제 입술에서 저도 모르게 ‘기적이야’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는 성전 문제를 앞두고 성도님들의 의견과 생각을 모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견과 생각을 뛰어 넘어 그 시간은 주님 앞에서의 고백과 간증으로 이어졌습니다. 20여년 강대상에서 성도님들을 바라보는 목사에게 그 날 모임은 다른 모임과 다르게 성도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움직이고 흥분케 하는 무엇이 있음을 감지 할 수 있었습니다. 고백하는 시간이 지나면서 감동을 받은 성도님들의 얼굴이 달아 오는 것 까지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있는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에 하나님이 불붙여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이전의 주향한 공동체 모임에서 보지 못한 고백들이었습니다. 그 날 고백들은 우리가 늘 하고 싶은 고백이었지만 우리의 삶의 상황과 연약함 때문에 고백하지 못한 고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분 한 분이 고백할 때 우리 공동체를 힘들게 묶고 있는 세력이 떠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끈쩍하게 붙어 있어 괴롭히는 세력이 떠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랫동안 우리의 본성에 붙어 있어 우리 영혼을 힘들게 누르고 있는 세력이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부담스런 주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님들 모두가 마음이 하나로 모아졌고, 무엇보다 기뻤고, 영혼의 자유함으로 고백할 수  있었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그 시간은 예배이며, 축제였습니다. 축제하면 요란한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연상하는데 고백하나 만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지금 당장 성전을 구입한 것도 아니고 무슨 일이 이루어지지도 않았는데 무슨 기적이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일을 가리키는 의미의 기적과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은 기적 자체의 사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역사하실 때 보여주시는 표적, 즉 사인(sign)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역사를 진행하실 때 우리에게 그 일의 확증으로 보여주시는 것이 사인(sign)입니다. 이번 일은 주향한 공동체에 이루실 하나님의 표적, 즉 사인(sign)으로 우리 입술의 고백을 주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입술의 고백에서 끝나지 않고, 함께 연합하고, 함께 기도하고 즉각적 순종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이제 교회와 가정과 기업에 진정한 하나님의 기적을 보아할 시간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 기적은 작은 기적들이 하나씩 경험되고 모아질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여러 부분에서 작은 기적이 필요합니다. 그 기적은 우리 삶의 전반적인 작은 부분에서부터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권투선수가 시합할 때 짧은 쨉으로 상대방을 가격하다가 결정적인 한번의 펀치로 승부를 결정짓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에도 작은 기적이 필요합니다. 엘리야가 처음에 기도할 때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고 계속 기도할 때 나중에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사렙다 과부가 자신의 먹고 죽을 한끼의 음식을 드릴 때 흉년 내내 마르지 않는 기적을 경험했듯이, 소년 자신이 먹을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의 도시락이 주님 앞에 내놓을 때 오천명이 먹은 기적의 역사를 경험한 것처럼 말입니다. 신앙과 삶의 대한 작은 변화가 우리 삶의 흐름을 확 바꾸어 기적을 이룰 것입니다. 우리의 경건생활, 예배생활, 헌금생활, 봉사생활, 전도생활, 삶의 전반에 걸친 작은 변화의 기적을 일으켜야 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