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의료 선교를 하고 계시는 강원희 선교사님은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고 불립니다. 의대를 졸업한 뒤 계속 꾸려온 개업병원이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며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48세가 되던 해, 느닷없이 병원과 가산을 정리하고 아내 최화순 사모님과 함께 네팔로 의료선교를 떠났습니다. ‘내 인생의 가장 귀한 시절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벌써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아직도 하루에 150명이 넘는 환자들을 진료하고 계십니다. 팔이 아파 손을 들기 힘들면 진통제를 맞고 진료를 계속 합니다. 그렇게 강 선교사님은 30년을 오지에서 아픈 사람들을 위해 진료를 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들 선교사님 부부의 지나온 삶과 인생을 그린 ‘소명3’이라는 영화가 2011년에 제작되어 국내에 개봉되었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 부부는 영화 시사회에 참석하지 않고, 어떤 관련 활동도 하지 않은 채 평소처럼 네팔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소명이 생겼습니까?’라는 질문에 강 선교사님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부터 이미 소명은 시작 됐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강선교사님의 이런 고백은 지금 네팔에서 선교사의 일을 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부르신 그 날부터 소명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소명은 우리가 예수 믿는 날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건물을 열심히 짓는 세 인부에게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거기서 뭐하고 계십니까?” 첫째 인부가 대답합니다. "보면 모르오? 돈 벌고 있수다." 둘째 인부가 대답합니다. "보면 모르오? 돌 깎고 있수다." 그런데 세 번째 인부는 "저요? 하나님이 시켜서 하나님 집을 짓지요"라고 대답합니다. 똑같은 일이지만 의미 부여가 달랐습니다. 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일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사람들은 공부나 일을 생계 수단(job)이나 출세 수단(career)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공부와 일을 생계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공부나 일이 주는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보상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일을 출세 수단, 즉 명성, 권력, 인정 등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성공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직업이나 일을 자신의 성공이나 자신의 성취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소명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주신 직업이나 일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시길 원하는 소명에 대한 순종입니다. 또한 소명은 어떤 특별한 직업이나 일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삶 자체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부름 받았다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삶의 현장이 바로 소명의 현장이며 우리는 그 가운데 그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소명으로 시작되어 소명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입니다. 다시한번 소명으로 주신 영광스런 삶을 확인하며 주신 소명으로 완주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