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06-35] 무엇을 붙잡고 있습니까?

관리자 2006.08.27 04:01 조회 수 : 5610 추천:63

미국 시카고 휘튼대학에 브랭카드 홀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그 건물의 2층 복도에 올라가 보면 휘튼대학이 배출한 선교사들의 명단이 있다고 합니다. 몇 사람의 사진 옆에는 십자가가 붙어 있는데 이 십자가는 선교의 삶을 살다가 순교했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그 중에 1949년에 이 학교를 졸업한 제임스 엘리어트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대학시절에 자기 생애를 어떻게 가장 소중하게 바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지금까지 한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생애를 바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의 에콰도르에 있는 이오카 인디언 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학교를 졸업 후 그는 뜻을 같이한 네 사람의 친구와 함께 남미 에콰도르의 이오카 인디언 부족을 선교하기 위해서 떠났습니다. 정글이 많은 지역이어서 야수로부터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서 언제나 옆구리에 총을 차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지 얼마 안돼서 갑자기 인디언 부족들이 창을 들고 나타나 그들을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옆구리에 있는 권총을 사용하여 그들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권총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에콰도르의 강가에 그들의 젊은 피를 뿌리고 죽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지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크리스챤 잡지사 기자가 엘리자베스 엘리어트 부인을 이렇게 위로했습니다. “세상에 왜 이런 비극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말씀을 삼가 주십시오. 비극이라뇨? 내 남편은 이 순간, 이 비젼, 이 영광을 위해서 이 땅에 왔으며, 그곳에 갔습니다. 남편의 죽음을 비극으로 표현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녀는 자기 남편이 휘튼대학 시절에 쓴 경건의 일기 중 한 부분을 공개했습니다. 이 글은 미국과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충격과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결국은 끝까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리고 결국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그것을 왜 붙들고 살아가는가? 우리는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우리의 삶은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이루는 삶이 되어야 한다. 놓쳐서는 안될 것이 있다. 날 구원하신 주님 앞에 부끄럼없이 내 삶을 결산하기 위해 이 부족한 모습 그대로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나를 부르신 주님의 소명 앞에 부족한대로 최선을 다하겠다. 놓쳐서는 안될 복음과 영생을 위하여, 결국은 붙들고 있을 수 없는 생명을 바치겠다. 젊음은 지나가는 것이다. 결코 붙들고 있을 수가 없다. 명성도, 자기만족과 쾌락도 결국은 붙들고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을 버리고 포기하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엘리어트의 고백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과연 우리는 무엇을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늘나라까지 갈 수 있는 영원한 가치를 붙들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우리는 진실하게 대답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대답에 응답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영원한 가치를 붙들고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말로는 복음과 영생을 위하여 산다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편리함과 세상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다면 실제 영원한 가치를 붙들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로 영원한 가치를 붙들고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걱정과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 새 생명 축제 연합팀 발표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목장마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기지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새 생명 축제를 향한 결의와 의지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터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결단도 중요하지만 실천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은 이론이나 말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의 삶에 있어서 꼭 붙들어 될 것을 붙들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다른 것을 포기하고서라도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드리는 새 생명 축제가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