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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38] 내가 행복해야...

관리자 2006.09.16 07:30 조회 수 : 5558 추천:45

지난 주간에는 11일(월)부터 시작하여 13일(수)까지 노회에서 개최하는 교역자 수련회에 참석하고 돌아왔습니다. 경치 좋은 설악산에서 노회 산하 목회자들과 사모님 200여명과 함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침저녁으로는 김의환 칼빈대 총장님을 강사로 모시고 부흥집회가 있었고 낮에는 특강과 나눔과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든 노회 산하 지 교회 목회자들이 잠시 목회의 현장을 떠나 재충전과 안식의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수련회 참석하는 목회자들이 모두가 얼마나 기뻐하고 좋아하시던지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피곤하고 지친 목회자들이 자신의 목회를 돌아보고 준비할 수 있는 재충전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게는 2박 3일 수련회 내내 은혜의 물결이 울렁거렸습니다. 우선 모처럼만에 목회자들만을 위한 모임과 집회여서 다른데 신경쓰지 않고 온전히 은혜만을 받을 수가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특히 아침저녁마다 주신 말씀이 제게는 너무나 큰 은혜였습니다. 이미 목회사역과 교수사역을 평생 경험하시고 은퇴를 앞둔 강사목사님의 말씀은 시간마다 제 마음에 회개의 시간을 가지게 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으신 강사목사님의 말씀은 여지없이 내리치시는 책망의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회개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허물과 연약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시간 후에는 내 자신을 말씀 앞에서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가장 큰 도전은 나 자신이 목회자로서 얼마나 행복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목사인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나는 행복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보고 행복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은 ‘빠담 풍’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바람 풍’하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예수의 제자의 삶을 누리고 구가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제자의 삶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앞뒤가 맞지 않나를 뼈저리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목사로서 늘 행복하려고 노력하고 행복을 늘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하려는 노력과 정말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목사 자신이 먼저 주의 말씀으로 풍성한 은혜를 누리고 역동적인 삶의 행복을 누릴 때 그 행복은 자연스럽게 성도들에게 은혜가 흘러가는 것은 너무나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그런데 저의 목회 현장을 돌아보니 그러지 못한 조건은 참 많이 있었습니다. 시시각각 무겁게 짓눌러 오는 목회 현장의 어려움과 교회를 향한 사단의 공격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필요 없고 어떤 환경에도 행복할 수 있는 목회자의 영성과 실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았습니다. 정말 겸손히 주의 말씀으로 내 자신을 복종케 하는 것만이 지금 제게 필요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수련회 기간 내내 주님의 말씀에 내 자신을 비추어 주님의 은혜로 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게 떠나지 않는 기도제목은 새생명 축제였습니다. 새 생명축제야 말로 세상에 아직도 하나님을 믿는 행복을 모르는 영혼을 인도하는 일인데 전도자가 행복해야 된다는 단순한 진리였습니다. 내가 예수 믿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예수 믿어 행복하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모든 교우들은 예수 믿는 행복을 모르는 분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오늘 나의 삶의 현장에서 그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론으로는 아는데 막상 내 삶의 현장에서는 늘 무엇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환경 때문에 행복을 이야기는 하지만 그 행복을 누리지는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새생명 축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도자들이 환경을 뛰어 넘는 예수 믿는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흘러가는 행복 예수 물결이 있다면 VIP를 인도하는 일은 너무나 자연스런 열매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