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2009-04] 생의 의미 - 소망

관리자 2009.01.25 01:29 조회 수 : 5566 추천:22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600만 명이 죽음의 수용소 가스실에서 죽임을 당할 때 그곳에서 기적적으로 생존한 뒤 그 때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긴 이가 있습니다. 그 책은 빅터 프랭클이라는 유대인 정신과 의사가 쓴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입니다. 그는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인간에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것, 그 마지막 것은 빵이나 섹스가 아니라 생의 의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벌거벗은 알몸이 되어 학대를 받으며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짐승처럼 죽어가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켜주었던 것은 생의 의미였다는 것입니다.

생의 의미가 우리를 마지막까지 지켜준다는 것을 그는 몇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말하고 있습니다.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를 맞기까지 일주일 사이에 수용소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기간에 식량사정이 나빠졌거나 간수들의 학대가 더 심해졌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들 유태인들의 대부분은 전쟁이 1944년 성탄절 이전에는 끝이 나서 성탄절을 가족들과 함께 보낼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절망뿐인 상황을 견뎌왔는데, 성탄절이 다가오도록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고, 그들은 자신들이 가졌던 소망이 소용없게 되자 살아갈 이유와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수용소에 갇혔던 한 음악가는 1945년 2월 어느 날 꿈을 꿨는데 그는 꿈속에서 1945년 3월 30일에는 전쟁이 끝나서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누구의 음성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음악가는 그 음성을 들은 뒤 그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고 그날만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꿈속에서 들었던 3월 30일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평화의 기미는 보이질 않았습니다. 결국 그 음악가는 꿈속에서 들었던 날의 하루 전날인 3월 29일에 자리에 눕게 되었고, 자유의 몸이 될 것이라 했던 3월 30일에 의식을 잃었고, 그 다음날인 3월 31일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여기서 한 가지 발견하는 것은 삶의 의미만 있으면 어떤 고난도 견딜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바로 소망이 있는 한 그 어떤 현재의 고난도 이결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6.25 동란 때의 일입니다. 압록 강변에서 중공군과 맞서 싸우다가 부상을 당한 미 해병대 대원들이 폭격 맞은 트럭 옆에 기대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벌겋게 부어오른 상처를 어루만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여하 42도의 혹한 속에서 싸늘하게 얼어붙은 깡통을 뜯고, 그것을 주린 배를 채워볼 뿐이었습니다. 그 대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파견된 한 종군기자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기가 막혀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어라고 한 마디쯤 위로를 해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만일 내가 신이라면 당신들은 내게 무엇을 구하겠습니까? 어떻게 해주면 당신들에게 위로가 되겠습니까?" 무표정한 얼굴들로 앉아 있던 미군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들에게 내일을 주십시오, 확실한 내일을 보여 주십시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경제로 인하여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주님 안에 있는 소망을 굳게 붙잡을 때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끝까지 기다립니다. 우리에게 주신 소망을 굳게 잡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