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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46] 죽어서 복음을 전하는 인생

관리자 2009.11.15 06:07 조회 수 : 5602 추천:20

우리와 함께 믿음 생활하던 남차원 성도님이 지난주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아직 한창이라고 할 수 있는 57세의 아쉬운 삶을 마감했습니다. 지난 주일까지만 해도 주일 아침 8시면 어김없이 주일 1부 예배 시작도 전에 일찍 나와 1층에서 서성거리며 예배를 기다렸는데.. 이제 고인(故人)이 되어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남차원 성도님은 우리와 짧은 신앙생활이었지만 기억이 많이 남습니다. 그 불편한 몸을 가지고서도 다니기를 좋아해서 특별히 아프지 않으면 사택 근처에 늘 볼 수가 있었습니다. 늘 목사를 보면 그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어서 와요. 목사님. 이리 와요” 저를 끌어 가게에 들어가서 박카스나 음료수를 사주기도 했습니다.

그 근처 사는 집사님들이나 교우들을 만나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주향한 교회에 와서 받은 주님의 사랑을 아시는지 교우들을 만나면 무언가 하나라도 사주고 싶어 하고 주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고(故)남차원 성도님은 3년 전 전도를 받아 주향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등록할 때부터 이미 몸은 술로 인하여 질병의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육체가 아프고 삶이 힘든 가운데 교회에 왔지만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난생 처음 가족들에게 받아 보지 못한 사랑을 받으면서 마음과 육체가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평생 술로 무너진 육체는 끝까지 술은 끊지 못하고 마음과 다르게 육체는 회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함께 사는 가족이 없어 아무도 그의 임종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가족이 없이 홀로 지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술로 산 인생이라 젊은 날에 아내도 도망가고, 그 이후 둘 아들과도 지금까지 뿔뿔히 흩어져 살았습니다. 물론 그에게는 여러 형제가 있었지만 그가 어디 사는 정도만 알았지 누구도 그를 돌아보는 가족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홀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의 소천 이후 형제들이 연락이 되어 그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경찰병원에서 만나 장례절차를 논의했습니다. 형제들은 찾아 올 사람이 없어 빈소는 차리지 않겠지만 모든 예식은 교회에서 하는 기독교장례의식을 따르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가족 중에 아무도 믿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기독교장으로 가족들이 동의한 것은 고(故)남차원 성도가 예수 믿고 천국 갔다는 데에 대한 인정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마지막 인생에 있어 교회로 부터 사랑을 받고 살았다는 데에 대한 가족들의 인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입관부터 시작하여 발인, 그리고 화장장에서 납골당에 안치까지 모든 예배에 참여했습니다. 고인이 술로 산 것 때문에 가족들은 지금까지 그와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 만큼은 함께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은 남은 가족들에게 강력하게 말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들은 나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시어 천국으로 인도했음을 선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장례 절차는 아무도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천국을 소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목사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씀을 통해 그가 살았을 때 하지 못했던 복음을 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술로 평생 살면서 가족들로부터 버림받고 몸은 병을 얻어 고통스럽게 살았지만 그의 죽음을 통하여 보여 준 것은 예수 믿고 구원 얻은 성공한 인생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다시한번 그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위대한 가치를 목격하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