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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8] 우는 교회

관리자 2008.09.21 08:04 조회 수 : 7142 추천:25

제가 처음 신앙을 접했던 모 교회는 옥수동 산동네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늘 우는 교회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제 기억에도 예배 시간이나 기도 시간에 우는 소리 때문에 예배 시간에 교회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찾아와 행패를 부린 기억이 납니다. 믿지 않는 분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왜 교회에서는 우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 기억에도 교회 예배시간이나 기도시간에 우는 분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가 70년대니까 지금에 비교하면 생활이 힘들어서 울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그 울음소리가 있을 때에 교회는 계속 부흥했습니다. 세상은 듣기 싫어하는 소리였는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교회와 성도들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반대로 울음소리를 찾을 수 없는 지금의 교회는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은 교회가 별로 울 일이 없어서일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이나 예나 삶의 환경은 달라도 여전히 울 일이 많습니다.

우리 주님에 세상에 계실 때 많이 우셨습니다. 웃으셨다는 기록은 없어도 우셨다는 기록은 성경에 나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주님은 십자가 지시기 전에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셨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었도다"(눅19:41-42) 우리 주님 같은 분이 무엇이 부족해서 울었겠습니까? 그것은 죄악에 가리워 잠들어 있는 성전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눈물이었습니다. 이 예수님의 눈물은 백성들을 향한 파토스의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 피와 땀과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그리고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자신을 드리기 전에 먼저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천년 전만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주님은 하늘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실 때 눈물로 기도하리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고 우시고 나서 성전에 들어가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눅19:46)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교회가 가장 중심적으로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이 시대 속에 무엇을 해야 될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섬김, 구원받지 못한 백성들을 위한 제사장적인 애끊는 중보의 기도가 없는 교회는 더 이상 존재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날 교회가 연약하고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재정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타락한 것은 그 때처럼 기도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교회는 기도 대신 조직과 시스템이 강조되고 기도대신 사람과의 사귐이 중심이 되고 있는 모습입니다. 교회에서 눈물의 기도 소리가 그칠 때 세상은 더 이상 소망이 없고 심판은 임박한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인 어거스틴의 회심에는 그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영국교회의 개혁과 부흥에는 존 낙스의 나라를 위한 눈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한국교회 부흥 역시 새벽기도에 많은 성도들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제 2차 대각성 운동의 챨스 피니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위해 기도하던 아벨 클러리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피니를 위해 기도로 헌신한 사람입니다. 하루 14시간 이상 계속되는 살인적인 기도로 피니의 각성운동과 말씀사역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그가 병약한 몸으로 자신을 기도의 싸움에 드렸을 때, 1830년 피니를 통해 로체스터시의 교회는 각성되고 그해 10만 명이 넘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영혼 구원에는 반드시 이런 눈물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이번 특별새벽 기도회에 이런 눈물의 기도 시간이 되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