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을에 두 명의 머슴을 둔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두 머슴 중 한 명은 주인이 보건 안 보건 상관없이 자기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여 주인의 농사일을 거들어 주었고, 또 다른 한 명의 머슴은 그와는 달리 주인이 없을 때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주인이 나타나기만 하면 지금까지 가장 잘 하던 것처럼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주인은 이를 모르는 척하고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데 주인은 이들 두 머슴에게 사경을 주기로 하고 그들을 불렀습니다. “이보게, 자네들. 지금까지 우리 집일 해주느라 고생이 많았네. 내일은 내가 자네들에게 사경을 줄 것이니 오늘 마지막으로 새끼를 꼬아 주겠나.” 그러자 한 머슴은 아무 말 없이 짚을 가져다가 물을 추겨 새끼를 꼬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인 위해 일하는 것이니 잘 해주고 가리라 마음먹었다. 또 한 머슴은 생각하기를 “내일이면 이 집을 나가는데 새끼를 꼬라고 하니” 하면서 투덜거렸다 일을 하기는 싫고, 하는 둥 마는 둥 한 발정도 시작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는 이내 잠을 청하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주인은 꼰 새끼를 가져오라고 하더니 새끼줄 길이만큼 엽전을 꼬여서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항상 주인 눈치만 살피던 머슴은 한 발 정도 밖에 안 되는 새끼줄에 엽전을 가져가야 했습니다.

잘 아는 이야기이면서도 우리에게 실제 충성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말해주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에 대한 충성을 생각할 때 더 그러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면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칭찬을 듣는 삶을 살았는지 악하고 게으른 삶을 살게 되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충성의 반대는 반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충성의 반대는 반역이 아니라 게으름이라고 말씀합니다. 원래 "게으름"의 반대말은 "부지런함"이어야 하는데 "충성"이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여기에 깊은 교훈이 있고 영적세계를 꿰뚫어 보시는 주님의 관점이 있습니다. 즉 충성된 삶은 착한 성품과 관련이 있고 악한 성품은 게으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 붙어 나오고 "악하고 게으른 종"이 붙어 나옵니다.

처음부터 충성은 하나님을 위해 신나게 살라는 부름이었습니다. 그것은 신령한 삶, 영적 승리를 위한 고단한 삶으로의 부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 한 번도 그의 제자들의 삶이 쉽고 편안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 길은 처음부터 좁은 길이었습니다. 충성은 우리 모두에게 대가와 절제, 희생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게으른 사람은 그것들을 지불하기를 꺼려합니다. 바로 그것이 불충이요 악입니다. 바로 이 게으름이 충성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게으름이 대적해야 할 치명적인 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게으름에게 질 수밖에 없습니다. 게으름이 있는 한 충성의 열매는 맺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게으름은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성향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불충성이요, 맞서 싸워야 할 내 속의 악인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의 특징은 자신을 향한 주인의 뜻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보면 한 달란트 받는 자가 땅 속에 묻어 둔 것은 주인에 대한 불신과 주인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입니다.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주인에 대한 불신 문제입니다. 우리가 바쁘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뜻과 신뢰가 없으면 게으르게 됩니다. 바쁘게 사는 것으로 주님 앞에 우리의 게으름이 카바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닫고 주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 없이는 우리는 게으름의 악에 빠집니다. 또한 게으름을 극복하는 실제적인 가장 좋은 방법은 주님의 명령 앞에 즉각 순종하는 것입니다. 즉각 하지 않으면 우리는 핑계와 변명이 따라 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해를 결산하면서 또 한 해를 기회로 주신 주님 앞에서 영광과 칭찬과 상을 받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