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유비가 길을 가다가 추운 겨울에 징검다리도 없는 작은 강을 직접 건넙니다. 옷을 걷고 얼음이 얼 것 같은 차가운 강물을 겨우 건넜는데, 건너온 강 저편에서 노인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부릅니다. “야, 이 젊은 놈아, 이리로 다시 좀 건너와서 나를 좀 건너다오. 이 늙은 사람을 그냥 두고 너만 갈 수 없지 않느냐?”고 고함칩니다. 유비는 다시 차가운 강물로 되돌아가서 그 노인을 등에 업고 강을 건넙니다. 그런데 이 노인이 건너온 길을 다시 돌아가자고 합니다. 자기의 등짐을 그 곳에 놓아두고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오히려 나무랍니다. 기가 찬 유비는 하는 수 없이 노인에게 그럼 여기에 좀 기다리라고 하고 혼자 건너갔다가 오겠다니까, 이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야 이놈아, 내가 너를 언제 보았다고 너를 믿고 내 등짐을 맡기느냐? 나를 등에 업고 같이 가야지!” 등짐을 가지고 도망이라도 가면 어떻게 하느냐는 거지요.

유비는 그 노인을 다시 등에 업고 강을 건너서 등짐을 찾아서 강을 다시 건넜습니다. 강을 건넌 다음에 노인이 유비에게 묻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두 번이나 강을 건넌 것이냐?” 유비가 대답합니다. “나는 두 배로 고생하는 것과, 모두를 잃는 것 중에서 두 배로 고생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다시 그 노인을 등에 업고 가지 않았다면 첫 번째 행한 것이 모두 날아가 버리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그 노인은 감탄하며 유비에게 앞으로 큰일을 할 인물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충고를 하겠다며, 첫째는 이런 마음을 결코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너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겉으로 나타내지 말라고 합니다. 유비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도 이것을 밖으로 나타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참 멋있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을 통일한 원동력이 이런 멋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멋있다’하면 아름다운 외모를 제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외모에 생명을 거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멋은 외모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사람의 영성에서 나오는 것이 멋입니다. 영성이란 바로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과 삶에서 진정한 멋이 나오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기독교는 멋을 잃은 것 같습니다. 지난주만 해도 봉은사에 가서 예배드리고 땅 밟기 동영상이 유포되어 결국 봉은사에 찾아가서 사과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너무나 그리스도인들이 멋이 없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멋이 없다는 것은 신앙이 목적이 되지 않고 삶의 방편이 되거나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진리로 살고 그 은혜를 입어 섬기는 삶이 바로 우리에게는 힘이 되고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삶의 실제는 없고 종교 생활을 통하여 자신이 받을 복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매일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이 기쁩니까? 정말 하나님 말씀 묵상하는 것이 꿀송이 보다 더 답니까? 매일 이웃을 사랑하고 섬김이 정말 삶의 이유입니까? 진정 세상의 전통과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복음의 자유 함으로 늘 자신의 삶에 대한 변화의 꿈을 꾸고 계십니까? 위 질문에 ‘네’라고 해야 진정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사는 멋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질문에 ‘네’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구하고 찾는 것들이 대부분 세상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을 이야기하면 누구나 교회와 성도가 변해야 된다며 침을 튀기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진정 자신으로부터 시작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사는 자유와 기쁨이 없이는 울리는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종교개혁주일 아침, 멋있는 사람으로 가득 찬 주향한 공동체를 꿈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