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거리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나이 70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살을 한 것이었습니다. 앰뷸런스가 와서 할머니는 곧 병원으로 실려 갔고 뒤이어 달려온 경찰들이 사람들을 해산시키고는 자살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할머니의 아파트로 올라갔습니다. 실내는 온갖 고급 도구와 사치스런 장식품들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왠지 썰렁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이 정도 살림으로 보았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닌 것 같고, 혹시 건강상의 이유나 불치병 때문일지도 몰라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주치의는 할머니가 나이에 걸맞지 않게 건강했다고 말했습니다. 골똘하게 고민하던 경찰관은 책상을 뒤져보았습니다.

할머니의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수첩을 펼쳐보는 경찰관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군.” 하고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할머니의 수첩엔 365일 동안 똑같은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오늘도 아무도 나에게 오지 않았음.” 이처럼 우리 주변에는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죽어가는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근본적으로 서로가 기대어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영양소결핍이 아니라 애정 결핍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금 외롭습니다. 군중 속에 고독이란 말이 그것입니다.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지만 너무나 외롭습니다.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는 이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일본군 후방기지 병원에 로데라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미군 포로들의 인체 실험하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5장 6부의 일부 즉 허파 얼마를 짤랐을 때 ‘얼마를 살 수 있는가?’ ‘간의 얼마를 남겼을 때 얼마를 살 수 있는가?’ 하는 잔인한 실험을 매일같이 계속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데는 미쳐버리고 맙니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토록 끔찍한 실험을 매일 반복하는 가운데 양심의 고통을 잃어버려가고 거기서 오히려 묘한 쾌감과 재미를 느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미쳐버리는 것입니다. 그의 절규는 “내 양심의 고통을 돌려주세요.”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엔도 슈사꾸의 단편소설 ‘바다와 독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작가는 현대인들의 무관심의 질병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한편 생명의 소중함을 망각한 잔인한 인간성을 나무라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신앙생활에도 엔도 슈사꾸의 독약 즉, 무관심의 독약, 영혼의 소중함을 잃고 살아가는 독약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정 신앙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영혼의 문제인데 이 영혼의 문제에 관심을 잃고, 자칫 껍데기만 붙들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까이는 나와 함께 사는 남편, 아내, 자녀, 부모님의 영혼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주일마다 얼굴을 보는 교우들의 영혼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나와 같이 사는 이웃의 영혼에 대해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무관심할 수 밖에 없는 타당한 이유가 우리에게는 너무 많습니다. 우리 자신이 바쁘고, 여유가 없고, 나 자신도 챙기기에 역부족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분명 우리에게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릭 프롬이 사랑의 다섯 가지 기술 중에 ‘관심’을 사랑의 첫 번째 조건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번 2010 새생명 축제를 한주간 앞두고 새벽을 깨우면서 진정 영혼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길 소원합니다.